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스크바 공방전 (문단 편집) === 양측의 병력 배치 === 태풍 작전에 참가하는 독일 중부집단군은 총병력 190만, 전차 1,700~2,000대, 각종 대포 14,000문, 그리고 전투기 549~780대의 대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, 여기에 [[전격전]]의 주역인 세 개의 기갑군(2, 3, 4)도 보유하고 있었다. 선봉이 될 전차군은 2전차군(구데리안), 3전차군(호트), 4전차군(회프너)[* 작전 시작 시점에는 구데리안의 2 기갑군만 야전군이었고 호트와 회프너의 군은 아직 기갑집단이었다. 이 두 기갑집단은 소련군의 반격 시점인 1942년 1월 1일에 기갑군으로 승격된다.] 여기에 일반 야전군인 2군(바익스), 4군([[귄터 폰 클루게|클루게]]), 9군(슈트라우스)까지 포함하고 있었다. 소련군은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인해 초반에 최소 500만여 명의 어마어마한 병력 손실(80만 명 전사 및 330만 명 포로 포함)을 보았고, 전차와 전투기 또한 각각 2만 대씩 잃는 등 예비 병력까지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. 소련군은 바르바로사 작전 직전, 일전에 [[폴란드 침공]] 당시 점령한 폴란드 동부 지역과 소련 서부에 290만 명의 병력을 배치했고 이후 작전이 경과하면서 추가로 500만 명을 동원했으나, [[대숙청]]으로 [[바보]]가 된 소련군 [[장교단]]과 [[이오시프 스탈린|스탈린]]을 비롯한 최고사령부의 [[삽질]]이 겹쳐 이 병력을 모조리 날리는 처참한 결과만을 얻었다. 설상가상으로 가장 가까이 있었던 대규모 병력 집결지인 [[키이우|키예프]]가 함락되면서 앞서 말했듯이 병력 손실만 포로 60만 명을 포함한 100만여 명 및 다대한 장비 손실을 보았기 때문에, 당장 모스크바 전면에 투입할 병력과 장비가 모자란 상황이었다. 그리하여 모스크바 방위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병력 125만, 전차 1,000여 대, 대포 7,000문, 전투기 900여 대로 전투기를 제외하고는[* 그나마 그 900여 기의 전투기 중에서도 가용 전력은 545기에 불과했다. 반격 당시에는 1,376기로 증가했다.] 양, 질 어느 면에서나 독일군에 비해 절망적으로 뒤져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